수액터스팜 선배들이 남긴 생생한 합격후기로 그 경험을 나누고 성공의 다짐을 합니다.
등록일 2017.10.22/조회수 1428
또한, ㅋㅋㅋ 동대 프로젝트때 설매재 자연 휴양림으로 캠프를 갔는데, 그 곳에서..숟가락 사건이 터졌었습니다...때는, 점심인지 저녁인지 애매할 무렵, 식사를 위해 친구들이 모두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앞에 걸쳐진 숟가락을 보지 못하여 식사를 하다가 그만 숟가락을 떨어뜨렸고, 저는 줍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국을 못 먹고 있는 저를 발견한 대장님께서 ‘상윤아, 선생님 숟가락 줄게’라고 하시며 저에게 숟가락을 건네셨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한 뒤, 숙소에서 나오는 소린이에게 ‘소린아 안에 숟가락 있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잠시 뒤에야 선생님께서는 제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고, 그걸 씻기 귀찮아서 다른 친구들에게 부탁했다는 걸 아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진심으로 답답해하시며 당장 숟가락을 씻어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숟가락을 씻으러 가면서도 ‘억울’하고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생각해보니, 백번 양보해도 제 게으름과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는 가끔 대장님께서 ‘숟가락 사건’을 언급하시며 저를 놀리시지만, 저는 저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시원시원하게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조금 찔립니다 ㅋㅋ)
마지막으로, 저의 내적 발전이 있게 해 준 사건이 있습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저는 많이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많이 없었죠. 부모님과도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던 저는 모든 일을 제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는 좋은 쪽으로도 작용하였지만, 나쁜 쪽으로도 작용하였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었지만,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했습니다. 그 문제는 고등학교 때 도 계속 되었습니다. 제가 배우를 하고 싶었을 때도, 저는 속으로만 궁리했습니다. 그러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자 부모님께 말씀 드렸었던 것 이구요. 그리고 야자를 빼야 할 일이 생겨도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리지 않고, 문자하나 틱- 보내놓고 도망가듯 빠져나오기 일쑤였습니다. 그 일로 많이 혼나기도 혼났지만, 저는 제 잘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게 더 합리적인데 왜 자꾸 귀찮게 돌아가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저의 성격적 결함(?)은 입시 때도, 재수 할 때도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이 극에 다달았던 순간은 바로,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이었습니다. 전날 밤, 일요일. 앞으로 나흘 남겨진 수능 공부를 하던 저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그날 저녁 반장인 종태에게 ‘나 수능까지 학원 쉴게!’ 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들께 문자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이신 김윤희 선생님께도 ‘선생님, 저 수능까지 집에서 쉬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쉬세요!’라는 내용의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능 이틀 전 날 밤, 친구를 통해 김윤희 선생님께서 저의 태도에 대해 많이 화가 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갑자기 고민에 쌓였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니, 저의 잘못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선생님께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저의 부족한 점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수능이 끝난 뒤 학원에 돌아오자, 선생님께서는 저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훈계를 하셨는데, 제가 새벽에 곰곰이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저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상당 부분 고쳤거나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시엔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하였습니다만, 위와 같은 일련의 발전들이 저에게 원동력이 되어 더 큰 힘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시 때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진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저에게 있는 징크스, 바로 1차 징크스입니다. (물론, 징크스를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고3 현역일 때도, 전국 청소년 독백대회 1차 합격, 동국대 1차 합격, 서울예대 1차 합격 이라는 성과를 올렸지만 모두 2차에서 떨어졌습니다. 재수를 하면서도 동국대를 1차 붙었지만, 2차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차 때는 긴장을 하지 않고, 즐기려는 마음이 컸지만...2차만 가면 붙으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뒷심이 부족했습니다. 책임감을 갖고 뒷심을 기른다면 2차에서 떨어질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간단한 원리를 깨닫는데 저는 1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징크스가 깨진 것이 청주대 독백 콘테스트에서였습니다. 그 곳에서 무대에 오르기 전엔, 입상에 대한 모든 부담감을 잊고 교수님들께 ‘코멘트를 받아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그 순간을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회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금상 입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상승곡선을 틈타 연극원 1차 시험 전에는, 저의 연기적 발전을 위해 제가 하고 싶었던 ‘코미디’를 했습니다. 돌낤의 성기를 했었는데, 재미 속에 목적을 잊지 않고 감으로서 1차 때 합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 입시 땐 1차도 떨어져서 큰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무대를 즐기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는데, 1차 합격이라는 큰 영광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2차 준비를 하면서, ‘국물있사옵니다’에서 탱크 역할을 했는데, 저의 덩치와 인상, 목소리와 내적 성향(ㅋ)등이 그 역할과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인지 하루 종일 인물을 놓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학원에서 돌아다니면서 역할의 소품인 담배를 입에 물고(비흡연자ㅋ), ‘대사를 생활화’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대사를 하고 다니기도 했고. 귀찮아서 기르지 않던 턱수염까지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다 양아치 건달인 탱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다소 짜증났을 때도 있었겠고, 극 중 저의 정부 역할이었던 ‘현소희(탱크가 갖고 놀다 버린 여자)’역할을 맡았던 미성이라는 친구에게는 장난을 치다가 양아치 소리를 들으면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물과의 밀착도가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고, 따라서 연습하는 즐거움도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리고 배틀을 할 때 마다 발전하는 제가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넌 그냥 탱크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더 열심히 연습했던 것도 사실입니다.ㅋ
자기소개서는 대장님께 들은 코멘트, 건너건너 들은 코멘트를 활용하여 저를 어필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게 제목도 좀 꾸미고 ㅋㅋ 그리고 글쓰기에서는, 800자 제한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대장님께서 조언해주신 대로 ‘분량 상관하지 말고 소신껏 논리적으로! 목적과 상황을 중심적으로’ 에 집중하여 2000자를 썼습니다. 글을 다 쓰고 난 뒤에는 ‘자살’, ‘음모’등이 판치는 것 때문에 ‘비관적인 아이’로 낙인 될까봐 갑자기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논리적으로 상상력을 펼쳤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위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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