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터스팜 선배들이 남긴 생생한 합격후기로 그 경험을 나누고 성공의 다짐을 합니다.
등록일 2017.10.22/조회수 1556
연기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중학교 3학년.
내가 연기에게 다가갔을 때, 고등학교 2학년..
문화, 예술에 대해 다소 생소한 충북 청주의 모 중학교 3학년생 박상윤. 학교 숙제 때문에 정말 우연히 보게 된 공연으로 인해 저는 무대에 대한 동경과 꿈이 조금씩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러하듯 쉽사리 부모님께 제 꿈에 대해 얘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이미 저의 꿈을 ‘천문학자’로 알고 계셨기 때문이고, 그런 아들을 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용기를 냈을 때가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3월 초였습니다. 사과를 깎으시던 어머니께, 정말 충동적으로 배우가 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역시나 예상하던 반응이 왔습니다. 불같으신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깎던 사과를 집어 던지셨고, 나중에 소식을 접하신 아버지께서도 배우가 힘든 직업이라고 반대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반대에, 저는 무턱대고 돈 5만원을 들고 극단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하겠다며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 결과, 다음날 아버지께 붙잡혀 다시 청주로 돌아왔습니다.ㅋㅋ 그 일이 있은 다음 날 부터는, 저도 부모님도 서로 ‘꿈’에 대해서는 절대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름 방학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다시 용기내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허락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 조건 하에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맨 처음 등록한 학원은 수팜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신생 학원이었습니다. 저는 키 180cm 에 몸무게 90키로가 넘는 거구였기 때문에, 그 학원에서도 사실상 ‘등록 했으니 다니는 애’ 정도로만 통용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기대하지 않는 학생이었던 거죠. 하지만 수시 기간에, 모두가 결과가 안 좋아 낙담할 때, 저만 동국대와 서울예대에 1차 합격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저는 한 순간에 기대주로 급부상했으나 연이은 동국대와 서울예대 2차 불합격에 크게 상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연극원 1차마저 떨어지면서 저의 자신감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심지어는, 연극원에 1차 합격하여 자기소개서를 쓰는 친구를 보면서 속으로는 이미 ‘재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호흡을 놓고 입시를 본 결과 그 해 정시는 제 바람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입시가 끝나고, 저는 곧바로 재수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재수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학원을 선택함에 있어, 이전 학원에서 가장 부족하다고 느꼈던 ‘정보’를 많이 알 수 있는 대형 학원을 위주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타학원을 내정해 놓은 상태에서, 그 학원에 다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너는 여기보다 수팜 가는 게 좋을 거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수팜이 어딘지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검색한 결과, 무한도전 사진전 보러 갈 때 마주쳤던 돕바의 주인이었습니다! (기억으로는...일산점 오순태 선생님을 뵈었던 것 같아요 ㅋㅋ) 게다가, 타학원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에 때마침 입시설명회에 맞춰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010년 2월 20일. 저는 나홀로 입시 설명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신사점 B스튜디오에는 많은 친구들과 학부모님들이 계셨습니다. 선생님 소개와 더불어 이정용 대장님의 입시 설명을 들은 뒤 대장님과의 상담을 통하여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느꼈습니다. ‘아, 여기다!’ 그리고 그 날, 타학원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전에 다니던 학원과 다른 커리큘럼으로 나날이 새롭게 배우는 즐거움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6월 중순 겸에 ‘세종 액팅 베스트원’에 나갈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학원에서 다달이 실시하는 미션에 계속 실패하여 오디션을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하여 실전 감각을 키우기 위해 도전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면서 벽에 부딪혔었습니다. 이전 학원에서 ‘너는 셰익스피어 작품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겠다.’고 할 정도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정면으로 도전해 보고자 선생님께서 클로디어스를 주셨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대회 준비가 한창일 때. 대장님께서 우리 모두를 A스튜디오에 소집하셨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해 주셨고, 대장님께선 저에게 ‘상윤이는 끈기만 있으면 동대 중대 노려볼 만하죠. 연극원을 노려보려면 좀 더 유쾌해질 필요가 있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전 이 말씀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디션이나 평소에 상당히 많이 유쾌해 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ㅋ 그리고 대회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배틀’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종태와 맞붙었고, 거수자는 같았지만 대장님이 제 편을 들어주셔서 제가 가까스로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난생 처음으로 새벽까지 남아서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위해 배우고 땀흘렸습니다...비록, 대회에서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시 철이 되어서는 모두들 분주해졌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 목 상태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비중격 만곡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권유받았습니다. 심각하진 않았지만 저는 나중에 시간 없을 때 하는 것 보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여 7월 5일, 갑작스럽게 수술 결정을 하여 한 달 동안 학원을 쉬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정말 중요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오랜만의 휴식으로 정말 편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는 에너지가 쌓여 가는데 표출할 수가 없으니 점점 답답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방학 때문에 놀고 있는 친구와 함께 공연도 보러 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답답한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공연을 보게 되면, 그 무대에 뛰어 올라가 같이 호흡하고 싶고, 영화를 보면 나도 저 상황 속에서 같이 숨 쉬고 싶어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기’가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친구와 저는 연습실을 찾아 여기 저기 돌아다녔습니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수시가 코앞이라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독백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죠. 하지만 연습실 대관은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워서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였고, 고민 고민 하던 끝에 노래방에 가서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친구의 학교에 찾아가, 빈 강의실에 들어가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저는 ‘연습’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달았습니다. 연습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마음대로 연습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 ‘연기’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는 기간이었습니다.
더불어 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환점, 발전 계기가 되었던 사건! 바로 동대 프로젝트 기간에서였습니다. 오디션 특강 수업을 들으면서 오디션의 기술에 대해 배웠습니다. ‘나는 교수님들에게 있어 최고의 선물이다! 양손 가득 그 무엇보다 값어치 있는 선물을 들고 교수님들에게 당당하게 찾아가자!’ 그리고 본격적으로 동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가 ‘억울해 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여태 ‘제 자신을 보호’하는 걸로 알아 왔는데, 사실 그러한 행동이 오히려 저의 점수를 갉아먹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