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터스팜 선배들이 남긴 생생한 합격후기로 그 경험을 나누고 성공의 다짐을 합니다.
등록일 2017.10.22/조회수 1806
올해 1월 말... 혹한기 훈련으로 산에 텐트를 쳤다. 말년병장인데 훈련을 안 빼주신 중대장님이 조금 미웠다. 중대장님은 나와 한살차이다. 후임들을 재워놓고 밖으로 나온다. 말뚝근무를 서야한다. 담배를 꺼내 문다. 연기인지 입김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휴....... 춥다.
저 높은 달을 보니 왠지 내가 초라해져서 견딜 수가 없다. 휴가 때 시험을 보러 갔었던 한예종이 생각난다. 침낭에서 후레쉬를 켜고 읽던 희곡들, 연등을 신청해서 잠을 아껴가며 독백연습을 했던 그 시간들....... 교수님께서 질문하셨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배우 했었어요?"
악. 아아아!! 으으으 으으윽.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배우는 무슨... 씻지도 못하고 처절한 훈련과 야간행군에 무아지경으로 걷는 27살의 김평조만 존재할 뿐. 박교수님의 말씀이 잔인하게 가슴을 난도질한다. 그리고 깊게 눌러쓴 방탄헬멧 밑으로 눈물이 한방울 뚝 떨어진다.
이불을 발로 걷어찬다. 아... 너무 시간이 이른가? 다시 눕는다.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눈만 살며시 뜬다. 오늘은...중요한 날이다.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오빠 언제 만날래?" 미성이다. 그렇게 신사역 4번 출구를 향한다. 난 군 제대 후 정확히 15일 만에 수액터스팜으로 갔다. 그리고 또 15일이 지난 뒤... 4월. 나는 그렇게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항해는 순조롭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사호는 9기이자 1기이기 때문에 질서도 흐렸고 아무래도 캡틴(이정용선생님)과의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고난과 역경이 찾아왔다. 난 고3이든 재수생이든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 속의 함정에 빠져버렸다. 나 자체는 27살임에 변함이 없다. 똑같은 눈높이는 좋지만 나이가 있는 학생으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난 어리석게도 그것을 깨닫치 못한채 시키는대로 열심히만 하는 다람쥐였다.
캡틴께 너무나 큰 실망을 드렸던 것이 내 기억의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난 거의 상반기를 죄책감으로 시달렸던 것 같다. 그리고 믿음을 얻고 다시 드리기 위해 앞에서는 물론 뒤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최무인선생님의 충동과 수컷으로서의 본능을 배웠다. 최무인선생님은 나의 구원자였다. 따뜻한 분이시지만 절대로 무대위에선 그런 모습을 기대하면 안된다. 배우는 강화된 인간이다! 이 말씀은 수업 시작과 함께 늘 하시는 말씀이다. 선생님께서 혹독하게 하면 하실수록 난 강해져갔다. 선생님께서 배우로서 하신 공연을 보고 웃고 울고 감동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난 최무인 선생님께서 담임을 하실 때 나 스스로 결정을 했던 것이 있다. "배우가 되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걸고 배우가 되겠다. 그렇게 여름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늘 동경하던 충동과 본능의 스승님과의 시간은 잠시 멈추게 되었다. 호출이 온 것이다.
캡틴께서 부르셨다. 또 다른 시작을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저 멀리 바다에 퍼진다.
캡틴의 직속팀인 1반이 되었다. 만만치가 않은 개성들의 팀원이다. 이때부터 나의 모든 진심과 기술을 담아서 항해를 순조롭게 펼치기를 기도하고 또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우리가 맡은 임무는 군부대에서 공연을 하는 집회. 그리고 여름에 했던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각종 미션들. 그리고 실전과 같은 오디션을 치루면서 우리는 점점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우리 팀원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요지부동의 문제아이자 신사의 에이스 행훈이. 수용성의 종결자 태건이. 나와 동갑내기 친구 지나. 긴 생머리를 고수하는 다솔이, 너무나 유쾌한 태웅이, 예비역 신우, 지은이, 진슬이....... 그리고 동우.
아침은 항상 동우와 태건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린 자연스럽게 삼총사가 되었었다.
이 둘한테서 배울 점은 연기로서나 테크닉이나, 그런성질의 것들이 아니였다.
신념. 수용성. 성실함.
세가지는 나에게 항상 자극을 주었고 동생들이지만 많은 것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렇게 1반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무렵, 항해의 가장 큰 고비가 날 찾아왔다. 수시기간.
중앙대 동국대가 한 날짜로 겹쳐버렸다.
오전에 중앙대를 보고 오후에 동국대로. 두개 다 떨어졌다. 특히 중앙대 1차 발표는 정말 힘들었다. 그 날은 내 생일이였다...
사실 중앙대, 동국대에 가고 싶은 열망은 없었다고 하나 막상 떨어지고 나니 충격은 장난이 아니였다. 그것은 나의 보잘 것 없는 위치 때문이였을까? 삼총사 중에 나만 떨어져서 그랬을까? 남들의 시선?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힘든건 힘든것이다.
프로젝트반이 결성되면서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최무인 선생님으로부터 한예종 지정작인 겟팅아웃의 칼을 받게 되었다. 김윤희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정서와 이승삼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디테일과 정당성을 토대로 최무인선생님의 충동,본능 마지막으로 캡틴의 상대방과의 호흡과 에너지를 생각하면서 역대 최고의 칼을 만들고자 홀로 작업에 들어갔다. 칼을 갈고 또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다.
항해는 굉장히 어려워졌다. 고독한 시간이였다. 인간은 참 나약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배우의 길을 걷는 것에 행복해하고. 또 슬퍼하기도 하고. 이 시점에는 문경희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배우가 되기 위한 가르침을 정말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기본을 연마해서 천천히 길을 걸을 수 있게, 또한 더 멀리 볼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
그 시점에 에너지를 받으러 파이팅캠프에 캡틴과 함께 가게 되었다. 양평에 설매재 자연휴양림에서 연기특훈 및 계곡입수, 새벽까지 이어진 연기연습. 별을 보면서 각자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기도 하고....... 하나님께 대들어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리고 캡틴과 약속을 했다. 이번엔 절실하게 욕심내서 꼭 학교 붙기로. 니가 원하는 학교 아니였어?
1차시험 보기 전날. 합싸를 맞고 캡틴께서 부르셨다.
"머큐쇼에 미련없어?" "예. 아무래도 연기에만 집중 할 수 있는게 좋겠습니다."
머큐쇼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비지니스 때문에 짐짓 연기집중이 흐려 질 수 있었다. 그래서 베르테르를 확실하게 믿었다.
메타포연습실 복도를 지나가는데 캡틴께서 말씀하셨다.
"합격해라. 명령이다."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른다. 캡틴의 미소와 함께 나도 웃었지만 신뢰를 주시는 감사함에 난 뜨겁게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1차 시험을 치뤘고 드디어 겟팅아웃의 칼을 연기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유품인 선글라스와 가죽자켓을 입고 재밌게 즐겁게 연기를 했다. 1차 발표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를 드렸다. "떨어져도 좋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정시까지 달려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나님 아버지. 제발..."
학원으로가서 교무실로 들어가는데 나도 모르게 복사기를 붙잡고 잠시만...하고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계신 김윤희 선생님을 보고 ...남자로서 당당치 못함에 반성을 하고 묵묵히 컴퓨터에 내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합격.
무릎이 풀렸다. 엄청나게 울었던 것 같다. 태건이와 아이컨텍이 되자마자 펑펑 울고, 내 일처럼 기뻐해주는 동우를 보고, 같이 눈물 흘리시는 김윤희 선생님. 뿌듯해하시는 김훈 선생님, 이승삼 선생님를 보면서 난...참...많이 울었다. 아쉽게도 많은 동생들이 떨어져서 슬펐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그들의 몫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캡틴의 가슴에 있는 돌의 무게를 가볍게 해드린 것에서만큼은 정말 기뻤다.
2차시험에선 자신 있었던 칼을 가지고 마음껏 기량을 펼쳤다. 특기는 나의운명은그대. 그리고 교수님과의 대화에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런적은 없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 되게 놀랐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자꾸 차올랐다.
수액터스팜 최종오디션이 2차시험 바로 다음날에 있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