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터스팜 선배들이 남긴 생생한 합격후기로 그 경험을 나누고 성공의 다짐을 합니다.
등록일 2017.09.29/조회수 1487
08년 동국대 연극학과 합격 / 수팜6기 조남융(사우고)
정말 시간은 빠르다ㅎㅎ 선배들 합격수기에 글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떨리고 행복한 순간인지 몰랐다. 나는 저기에 글을 올릴 수 있을가?? 선배들 정말 부럽다.. 이런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이젠 내가 그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지금 이렇게 합격수기에 글을 올리고 있는 순간에도 그동안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심장이 뛰고 있다.
합격수기라... 난 2007년의 나를 돌이켜 보며 학원에서의 생활을 몇마디 적어보고 싶다.
아마... 수팜 이라는 곳을 처음 가게 된 것은 2007년 오픈클래스 때였다. 오픈클래스에 들어오게된 이유는 보미누나와 정화형의 강력추천이었다. 사실 그쯤 나도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학원에 다닐필요없이 연극부나 혼자 연습해서 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딱히 입시학원이라는 곳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보미누나와 정화형이 재수를 결심한 다음날 연극부원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그날 보미누나와 정화 형이 술을 마시면서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수팜에 꼭 오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이런 학원은 드물다, 정말 특이한 수업방식에다가 학원아이들 실력도 쟁쟁하고, 제일중요한 건 선생님들이 정말 훌륭한 분들이시다 라고 말이다. 난 이야기를 듣고 어느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그닥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고 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보미누나는 2월 중순쯤에 학원에서 오픈클래스를 하니까 한 번 참여해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얼떨결에 오픈클래스를 듣게 되었다. 오픈클래스 수업시작이 3시인가 그랬는데, 그날 한 30분정도 늦었다-_-;; 나름 급한 마음에 구관 큰방문을 딱 여는 순간, 검정색 코트를 입고 연두색 머플러를 하고 바람머리를 한 남자가 엄청나게 강렬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정용 선생님 이셨다. 진짜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이, '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근데... 저사람한테 한번 걸리면 X돼겠다...' 그리고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암튼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고, 지금 잘은 기억안나지만 소리훈련과 발음연습을 한 것 같았다. 난 수업내내 다른 건 신경쓰이지 않고 선생님만을 계속 관찰했다.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것이 그 눈빛이었다. 막 무언가 담아두고 있는, 깊으면서도 강렬하지만 어떨때 보면 무섭기도 했다. 여하튼 그렇게 이정용선생님 수업이 끝나고 김윤희선생님 수업을 들었다. 김윤희 선생님 은 정말 첫인상이 지금과 비슷하다. 세련되고 도도하면서도 그 안의 따뜻함.. 김윤희선생님께는 연기수업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수업에 대한 것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고, 이정용선생님과 김윤희선생님의 잔상만 맴돌았다. 물론 수업도 상당히 재미있고 알찼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첫인상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 기억이 결국 학원을 등록하게 만들었다.
난 1학기 중간고사를 끝나자마자인 4월 24일, 수팜 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학원에 다닌지 일주일정도 되었을까,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겼했다. 학원아이들이 무슨 선생님을 신처럼 모시는 것이었다. 뭐 선생님을 존경할수도 있겠지만, 내가볼땐 그 이상이었다. 물떠오라고 하면 막 후다닥 자기가 먼저 떠오겠다고 문열고, 진짜 무언가를 시키면 왕의 명령처럼 따랐다. 내 인생에서 선생님이라는 사람을 그렇게 대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주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면서 내가 이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선생님의 말을 왕의 명령처럼 따르고 있었으며, 물이나 심부름 같은것은 꼭 내가 하고 싶었다. 그런 내가 되고나자, ' 왕의 명령처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로써의, 사람과 사람으로써의 배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관계를 맺기위해선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거두절미해서, 선생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학원에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으며, 나 스스로가 발전이 되고, 연기가 늘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후로 내 성격이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해도 난 정말 말이 없었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배구를 하면서부터 조용한분위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수팜 에 와서 적응해나가고 선생님과 조금씩 가까워 지면서 말도 많이하고, 자주웃고, 활발해 졌다. 그리고 그것이 말이 없었을 때보다 훨씬 행복했다. 이게 내 원래 성격이고, 원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학원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완전히 적응할 수있었다.
후배들이 이 글을 보게 될지 모르지만 고비는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학원에 적응하게 되면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발전의 욕심이 많아지게 된다. 그것이 비뚤어지면 자의식이 커지며 고민만 쌓여가게 되는 것이고, 곧바로 뻗어나가면 선생님께 받는 지적들을 잘 캐치하여 고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난 그때부터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수팜에 처음 왔을때부터 느꼈지만, 다들 너무나 잘했다. 그래서 적응하게 되자 더욱더 고민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매번 연기수업을 받을때, 잘하려고만 하다보니까 남들의 눈을 의식하게 되고, 고도로 긴장하게 되고, 그래서 연습했던 것의 10%도 발휘를 못하게 된다. 정말이지 나를 최대한 빨리 깰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하면 발전할 수가 없다. 이정용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연기라는 것을 제대로 배우게 되는 때는, 나를 깨고 자신의 주소를 잘 알때이다. 그러니까 난 6월 달쯤부터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7기들이 입시수업을 듣게 되면서 수도없이 듣는 코멘트이지만, 6기 선배의 입장으로써 그 수도없는 코멘트를 한번 더 강조해주고 싶다. 못하는 것은 절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못하니까 학원에 와서 배우는 것이고, 배워서 그 못함을 채우는 것이 수업이다. 스스로의 고집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는 것을 정말 강력추천해주고 싶다.
그런나를 180도로 발전시켜 준 것이 워크샵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오셀로로 캐스팅이 된 나는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더블캐스팅으로 24살이신 일응이형이었기에 더욱더 압박감이 있었다. 그리고 공연체제로 들어가고나자,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달라졌다. 아니, 나를 가르치는 방식이 달라졌다. 무대에서의 카리스마와 무게감, 에너지를 키우기 위한 수업들을 했고, 난 이를 통해 하루하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에너지가 부족하여 오셀로라는 역할자체에 다가가지를 못했는데, 에너지를 점점 키워나가고, 역할에 대한 고민의 고민끝에 당당히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선생님께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게되었다. 오셀로연기를 통해서, 공연을 통해서 다시한번 나 자신이 변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좀 길어지긴 했는데, 아무튼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입시체제로 들어갔다. 수시를 준비하면서, 2차에서 떨어지고 정시를 준비하면서, 선생님에 대한 믿음 , 친구들과의 믿음 ,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이 확고해졌다. 난 믿음 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 늘 오디션볼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니? 라는질문을 받으면, " 믿음직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 고 말한다. 연기를 하는데에 있어서, 특히 입시체제때 독백연습을 할때, 믿음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이 상황에 있다는 것을 믿고,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믿고, 역할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동국대 정시를 준비하는 동안 상대방에대한 믿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게 믿음을 갖고 달려간 끝에, 동국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게 되었던 것같다. 연기에 있어서의 믿음, 선생님과의 믿음, 수팜식구들과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합격자발표를 할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인다. 선생님을 끌어안으며 흘렸던 뜨거운 눈물... 평생에 잊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나를 바꿔준 선생님, 그리고 수팜 이었다